Note

'2017/03'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7.03.29 작은 기적
  2. 2017.03.28 Nglanggeran 산 위에서
  3. 2017.03.16 만들며 걷는 길
  4. 2017.03.10 목판화 행복

작은 기적




1.

 족자 집에서 내면초상화 파티를 하였다. 족자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내면초상화를 그려주었다. 그 중 스물 한 살 티아의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는 ‘긍정적인 사고’였다.


 “돈은 없었지만 그냥 가고 싶었어, 이스탄불에. 왠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갈 수 없을까? 바라고 또 바랐어. 하도 주변에 말하고 다니니까 어느 날 걀리가 ‘교수님과 의논해보면 어때?’하더라고. 그래서 큰 기대 없이 교수님께 의논드렸더니 일단 학교에 기금이 있으니 제안서를 제출해보라고 하신 거야. 마침 이스탄불에 전공 관련 컨퍼런스가 있었고. 거기 참석하겠다고 제안서를 제출했더니 통과되어서 학교 지원금으로 이스탄불에 갈 수 있게 됐어.”

 “그전까지 나는 컨퍼런스에 학부생이 지원받아 참가할 수 있는 지도 몰랐어. 그냥 이스탄불에 가고 싶으니까 계속 갈 수 있을 거라고만 줄곧 생각해왔거든. 그랬더니 이런 일이 생겨났어.” 

 “난 뭐든 바라는 게 생기면 다 잘 될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러면 신기하게도 기적이 일어나.” 



2.

 족자에 갈 때의 나는 그저 즐겁게 작업을 하다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 티아와 친구가 되었고 이어 걀리, 지크리, 라이언, 카쭉과 사귀게 되었다. 이 무슬림 친구들은 나에게 무슬림의 문화, 그리고 족자의 거리를 소개해주었다. 

 또한 갤러리겸 헌책방의 주인장 시깃과 친구가 되었고 그에게 한스, 팔레비, 아리를 소개 받았다. 그 인연으로 팔레비의 목판화 작업실에서 목판화를 작업하게 되었다. 

 목판화 작업실에서는 크로키 작가 밤방을 알게 되었다. 이 친구는 내게 에이스 콜렉티브 작가그룹 멤버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알게 된 루디는 나에게 실크스크린 갤러리 크랙 담당자 모키를 소개해주었다. 모키는 내게 크랙에서의 전시 제안을 하였다. 

 기록용으로 사용하던 SNS를 통해 아촘을 만났고 아촘이 소개해준 아랴와 친구가 되어 아랴의 작업실에도 매일 출근하여 작업했다. 아촘과 아랴는 나를 족자에서 열리는 갤러리 오프닝들에 초대해주었다.

 갤러리 오프닝에서는 마티아스와 비비앙을 알게 되었고 비비앙은 동판화 스튜디오 그라피스 밍기란에 데려가주었다.  


 즐겁게 작업하다 오자는 나의 소망은 내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실현이 되었다. 



3.

 소망은 종종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소망이 이루어지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장의 내 판단만으로 당장 그 소망이 이루어질지, 이루어지지 않을지 가늠하기보다는 일단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편이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풍경만으로 내가 나아갈 길을 한정짓지 않으려한다. 내가 모든 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갈 수 있는 길이 제한된다. 눈을 감고, 일단 가고 싶은 목적지부터 상상해본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그리하여 목적지를 포기하고 적당히 멈춰서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에나는 나의 한계를 인정한다. 동시에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더 넓은 가능성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믿으며 걷다보면 내가 이전에 서 있었던 곳에선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펼쳐지고 끊어진 듯 보였던 길이 이어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인지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내 가능성의 한계가 사라진다. 


 나도, 티아처럼 삶이 가져다주는 작은 기적들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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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langgeran 산 위에서

 


1.

Nglanggeran 산에 올랐다. 

오랜만의 등산이었다. 

좁고 가파른 통나무 계단을, 바위를, 흙길을 거쳐 땀 흘리며 정상에 다다랐다. 

거기서 나는 우연히도 상크링 갤러리 전시 오프닝 때 만났던 마티아스를 마주쳤다. 

 

다른 경로와 시간을 거쳐 같은 장소에서 만나다니.

나는 굉장한 반가움을 느꼈는데 그것은 마치 

 

연락이 끊어졌다가 근 십 년 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가 어색함 없이 이어졌을 때.

전혀 다른 배경에서 자란 이국 저자의 책에서 나와 같은 삶의 태도를 발견했을 때. 와 흡사한 반가움이었다. 

 

같은 산을 오르는 사람끼리는 

정상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 

그것이 등산의 즐거움. 

 

 

2.

그 날 산에 오른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지만 

사진은 많이 찍지 않고 마티아스와 주저앉아 하염없이 이야기 나눴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

경치를 즐기느라 이미 행복하다면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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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며 걷는 길



 목판화 수업 중 Pahlevi와의 대화.

 "Pahlevi, 어제 배운 인도네시아 스타일이랑 오늘 배운 일본 스타일이랑 조합해서 하면 안 되나?"

 "Why not? 컨템포러리 아트에선 다 되지."


 길을 만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Sigit은 내가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예술가로 살고 있다고 하니 길을 한 번 만들어 본 사람은 앞으로 어디서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지난 날 삶의 기로에서 나선생님은 기존 체계에 편입되기보다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가는 종류의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힘들여 만든 나의 길을 돌아보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그건 나만이 걸어갈 수 있는 나에게 꼭 맞는 맞춤옷 같은 거니까.


 길을 헤쳐 나가며 가끔. 아니 자주 나락으로 떨어진다. 후각과 촉각에 의존하며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두렵다. 그렇다고 잘 닦여진 길을 찾으며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루라도 내가 이 세상에 머물다 간 것과 아닌 것이 다르도록, 나만의 흔적이 남도록. 겁 없이 탐험하고 그리하여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어제는 스쿠터를 타다가 넘어졌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공터였고, 굉장히 느릿한 속도로 연습하고 있었건만. 겁나서 브레이크를 세게 잡았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발목의 상처는 피범벅으로 무시무시해보였으나 닦아내고 보니 미약한 것이었다. 뼈도 무사하고 몇일 안정 후 나을 일만 남았다.

 

 다 낫고 나면, 나는 다시 연습할 것이다. 계속 넘어지고, 떨어지고, 다치고 다시 일어서서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주변에 이미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나도 계속 용기를 낼 수 있다.


 , 감사하다는 말을 나직이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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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화 행복



1.

"보고 싶어."

"가끔 네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서 염려돼. 누군가를 필요로 해서 옆에 있는 건 건강한 관계가 아니거든. 나에겐 네가 상상하고 원하는 그 무엇이 없어. 그건 네가 스스로 만들고 찾아야 해."


2.

행복은, 누군가를 통해 나오는 것도 누군가의 곁에 있어야 나오는 것도 아니다. 또한 어떤 물질을 통해 나오는 것도 특정 물질을 소유해야 나오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목판화 만들듯 나의 손끝으로 조물조물 틀을 만들고 찍어내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행복의 재료. 

행복은

1) 행복을 느낄 시간. 그리고 

2) 마음의 여유. 

3)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에서 나온다.

이 셋이 갖춰져 있다면 어디서건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에는, 행복을 느낄 시간이 부족하다. 서울 사람들은 어려서는 야자에 커서는 야근에 쫓기듯 바쁘다. 그러다보니 마음의 여유도, 행복을 느낄 능력도 길러내기 힘들다. 


3.

고무 꼭지가 하나 굴러다니기에 어디서 나온 건진 모르겠지만 필요한 것은 같아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Sigit이 집청소하다가 나머지 한 쪽을 찾았다.

"I found another one."

"Where?"

"Over there."

"Hahaha"

작은 것에 크게 웃을 수 있는 하루하루가 좋다. 

이곳에는 행복을 느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 둘이 갖춰지니 행복을 느끼는 능력 또한 자연스레 자라난다.


서울에 돌아가면. 행복을 느낄 시간부텀 사람들에게 선물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과거 내면초상화* 테이블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선물했듯이. 

재미난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면초상화 : 2008년부터 작가 초선영이 진행해 온 예술 프로젝트의 명칭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한 단어'를 관객에게 받아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눈 후, 그것을 즉석에서 그림과 시로 표현해 드리는 작업입니다. 

그간 서울, 전주, 뉴욕, 발리 등 다양한 도시에서 다국적 사람들의 3000여 명의 내면초상화를 그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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