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이별



나는 다음의 이유로 지갑을 잘 들지 않는다.


1) 10년을 거슬러 올라가 대학교 1학년, 제대로 된 첫 지갑을 가지게 되었을 때 무릎에 올려놓은 채 앉아 있다가 일어나며 떨어뜨리고 그냥 걸어가버리는 방식으로 잃어버렸다.


2) 나를 불쌍히 여긴 단짝 친구가 생일 선물로 지갑을 선물했으나 하루만에 강의실 책상 위에 두고 가는 방식으로 잃어버렸고


3) 단짝 친구에게 미안하여 그 다음날 몰래 같은 지갑을 샀으나 기억나지 않는 다른 방식으로 잃어버렸다. 


4) 그 뒤로 한참 지갑을 들고 다니지 않다가 아르바이트하고 번 현금 20이 든 지갑을 통으로 떨어뜨려 잃어버린 후로는 이제 정말 웬만해선 지갑을 들지 않는다. 


카드만, 돈만, 따로 잃었다면 크게 문제될 일 없는데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리면 신분증에 쪽지에 사진에 명함에 새로 발급받을 것도 많을 뿐더러 돌이킬 수 없는 것도 많다. 물론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마는. 그래서 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이리 장황하게 지갑 이야기를 꺼냈느냐 하면 내가 어제 또 지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갑을 웬만해선 잘 들지 않는다 했다만. 그날 따라 주머니에서 꾸깃한 돈을 꺼내기 싫어 정갈하게 펴서 정리한 후 정말 오랜만에 들고나갔단 말이다. 그 지갑 원래 잘 들고다니지도 않는데.


작년 여행 갔다가 벼룩시장에서 10유로에 득템한 카멜색 양가죽 지갑. 내 지갑. 아마 길을 황급히 건너다가 떨어뜨렸음이 분명하다.


문제는 지갑을 하도 오랜만에 들고나갔기 때문에 지갑 속에 무엇이 들었는 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거다. 

거리를 헤매고 갔던 가게를 다시 찾아가 지갑을 잃어버렸음이 확실해진 후 


나는 전날 잠을 설친 탓에 무거운 머리로 2시간 여를 소파에 누워 멍하니 있었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갑 속 무엇이 있었는 지,

무엇을 잃었는 지.


무엇을 정확히 잃었는 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상실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두어 달 후, 

나는 무엇을 잃었는 지 비로소 자각하

주저 앉아 뒤늦게 또렷한 상실감을 느낄 테지.


늘 그랬듯, 

늘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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