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사람, 장소, 환대 - 김현경 


(8월의 독서. 책 메모)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사회를 유기체나 시계, 또는 벌떼가 와글거리는 벌집에 비유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회는 그와 같이 물리적으로 분명한 윤곽을 갖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각자의 앞에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는 각자의 앞에 펼쳐져 있는 잠재적인 상호작용의 지평이다. 


타인이 내게 '현상한다'는 말은 그가 나의 '상호작용의 지평 안에 있다'는 말과 같다.


물론 상대방은 나를 '무시'할 수 있다. 즉 나의 신호에 화답하지 않고,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할 수 있다. 

의례의 사슬을 구성하는 행위들 하나하나는 질문이자 요구이며, 초대이자 도전이다. 


외국인으로서의 삶 외에 다른 삶을 택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것은 그가 결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순수와 위험』에서 더글러스는 더러움을 자리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음식이 그 자체로 더러운 건 아니지만, 밥그릇을 침실에 두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면 더럽다."


여성은 신발이나 밥그릇과 같은 방식으로 더러워지지 않는다. 가부장제도 하에서 여성은 사회 안에 어떤 적법한 자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여성은 단지 스스로를 비가시화한다는 조건으로, 물리적인 의미에서 사회 안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고 있을 뿐이다.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동등한 사람으로서 사회 안에 현상하려는 순간, 이 허락은 철회된다.

'깨끗한' 여성이란 보이지 않는 여성이다. 


'아웃카스트는 더럽다'는 말은 아웃카스트의 사람다움에 대한 부정이자, 사회적 성원권의 부정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더럽다'는 말은 죽일 수도 길들일 수도 없는 타자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을 담고 있다. 그 말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부정이 굳이 필요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주체성을 역설적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더러운 년'이라는 욕을 들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런 말을 듣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다. 


걸인의 존재는 현대 사회의 구성 원리에 내재하는 모순을 폭로한다. 현대 사회는 우리가 구조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사장이든 말단 사원이든, 부자이든 가난하든-사람으로서 서로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구조적인 위치가 남들에게 구걸을 해서 먹고살아 가야 하는 위치라면, 그는 사람으로서도 결코 다른 사람들과 동등할 수 없다.


우정은 동등성을 전제하므로, 우정을 만드는 모든 교환은 두 사람 사이의 균형을 깨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얼굴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든다. 사회라는 연극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배역을 수행하려면, 적절한 의상과 소품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아 이미지는 그리고 자기에 대한 감각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해주면서 동시에 동등하게 만들어주는 이런 소유물들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수도원에서 군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체적 시설은 먼저 입소자들에게서 이런 물건들을 빼앗는 것이다. 

경제력을 상실한 사람은 이런 무기들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게임에서 탈락하게 된다. 경제적인 소외가 이리하여 사회적인 소외로 이어진다.



"경제적 자율성에 기초한 자유로운 관계"라는 우정의 이상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혹은 타인의 경제력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를 간과한다. 

남편이 어떤 사람이든 그에게 생계를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전업주부는 우정이라는 영역 속으로 들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 남편과 그녀 사이에는 우정이 생기기 어렵다. 남편은 그녀가 주는 모든 것을 자기가 준 것의 일부를 돌려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녀가 남편의 생일에 선물한 넥타이는 남편의 돈으로 산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선물을 할 수도 없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남편으로부터 받은 것이며, 남편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전업주부는 증여자가 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우정은 일종의 선물이기 때문에, 우정을 나누려면 먼저 증여자가 되어야 한다. 


가부장제는 또한 가족 구성원들을 경제적 이해관계로 엮어놓음으로써, 그들 사이에 순수한 감정이 흐르는 것을 막는다. 이혼과 동시에 생계가 막막해지는 여자가 사랑과 타산을 구별할 수 있을까? 또한 그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믿을 수 있을까? 자기 말대로 하지 않으면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애정을 느낄 수 있을까? 또 그 아버지는 아들의 복종을 존경의 표시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부모들은 재산을 직접 물려주는 대신에, 자녀의 몸에 그것을 투자하고 그 몸을 물려주기로 마음먹는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상속자이면서 동시에 투자 대상, 즉 재산 자체가 된다. 

상속이 특정한 시점이 아니라 양육 기간 전체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족은 만성적인 갈등상태에 놓인다. 부모의 상속 프로젝트에 동의하지만, 물건 취급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아이들, 재산관리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엄마, 가장이면서도 이 프로젝트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는 아빠가 갈등의 새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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