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모멘트 빌라 (Moment Villa)

 

 

  <모멘트 빌라(Moment Villa)>는 친구 K의 발리 별장이다. 

  휴가+출장지를 고민하던 내게 그는 흔쾌히 자신의 별장을 내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2016년의 마지막 달을 잊지 못할 그곳에서 작업+휴식하며 보낼 수 있었다. 

 

  모멘트 빌라는 내게 공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곳이다. 

 

  몇 백평에 이르는 저택인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집은 특별한 구석이 많다. 이 집은 본래 족자카르타에 위치하였던 것을 프랑스인인 전주인이 발리에 옮겨와 다시 지은 것이다. 그래서 모멘트 빌라에는 인도네시아 스타일의 지붕과 프랑스식 큰 창문 등 두 나라의 건축 스타일이 모두 녹아있다. 

 

  머무르는 2주간 내가 사용한 방은 복층 형식으로 되어 있었으며 넓은 욕실+ 발리식 야외 샤워부스가 딸려 있었다. 야외 샤워부스에선 바람과 비와 햇살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몸에서 퉁기는 물줄기 따라 많을 때는 네 쌍의 무지개까지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좋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방에 나서기 전, 하루를 '자연샤워'로 시작하곤 했다. 

 

  세월따라 반질반질해진 나무 마룻바닥과 기둥이 정감있는 넓은 거실에 들어서면 아름답게 조각된 긴 테이블이 있었다. 난 거기에 앉아 아이리쉬 커피와 아침을 먹으며 작업하기 즐겼다. 술기운이 올라오면 이내 정원 가까이에 있는 소파에 드러누워 책을 읽다 낮잠이 들었다. 한 귀퉁이 선반 위 오디오를 틀면 높은 천장 가득 음악이 울려퍼졌다. 햇살을 바라보며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잘 자란 잔디를 맨발로 밟으며 삭사악사악 걸어다녔다. 좀 더 느슨하게 사색하고 싶을 때에는 간이 침대에서 마사지를 받기도 했다. 

 

  집 밖에 나갈 때는 약 오백미터의 대숲을 헤쳐지나가야 한다. 밤에는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간혹 박쥐가 날아다녔다!) 더욱 신비로웠다. 신발 직직 끌고 걷다보면 바닷가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끝이 없을 아름다운 저택. 내가 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름 아닌 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건 S 이러한 집에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일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다. 서울의 아파트들은 대개 구조와 생김새가 비슷비슷하다. 그렇다보니 아파트들끼리의 단순비교가 가능하다. 심지어 점수로 매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점수화가 가능하니 더 비싼 아파트는 더 넓거나 더 위치가 좋은 곳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툭 까놓고 돈을 더 주면 단순 비교해서 더 좋은 집으로 갈 수 있다. 특정 아파트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는 딱히 없다. 옆이나 밑층, 앞동이나 뒷동에서도 비슷한 집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모멘트 빌라는 달랐다. 

 

  모멘트 빌라는 모멘트 빌라가 아니면 안되는 그런 집이었다. 싯가로 따지자면 서울의 고급 아파트가 더 비쌀지 모른다. 그렇지만 모멘트 빌라는 그런 식의 단순 비교가 불가능했다. 

 

  우선 모멘트 빌라는 그 위치가 아니면 안되었다. 뉴욕이나 도쿄에 있어서도 안되었다. 그 꼬불꼬불 들어오는 그 긴 대숲길이 없으면 안되었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없어서도 안되었다. 발리의 짐바란, 거기에 있어야만 했다.

  모멘트 빌라는 그 나이가 아니면 안되었다. 그 반질반질한 목재의 느낌은 그 나이에서만 나오는 빛깔과 광택이었다. 사람 냄새 나는 곳이었다.

  난 심지어 모멘트 빌라의 벌레들도 사랑했다. 밤이 되면 온갖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정원을 가득 메웠다. 큰 프랑스식 창문으로 빗물이 들이치는 것도, 햇볕이 강해 창틀색만 하얗게 바랜 것도 그렇게 좋았다. 

  그 집이 아니면 안되는 고유한 매력을 모멘트 빌라는 가지고 있었다. 모멘트 빌라는 대체 불가능한 집이다. 

 

  그러니까. 모멘트 빌라 같은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했다. 단순비교 불가능한, 내가 아니면 안되는 그런 고유한 색과 향을 지닌 사람. 

  모멘트 빌라 같은 사람이 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 삶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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