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파울라와의 편지 정리




0-1.

파울라와는 홍대 프리마켓에서 '내면초상화'를 그리던 중 알게 되었다. 기웃기웃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하는 눈치이길래, 자신을 대변하는 한 단어를 주면, 짧은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흥미로워하면서, 자리에 앉았고, 자신을 표현하는 한 단어로 'balanced'라는 단어를 주었다. 왜 그 단어를 주었는지 말해달라고 하자, 그녀는  모든 면에서 균형잡힌 삶을 살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든 면에서 가득찬 삶을 살고 싶다고도 했다. 한 군데 치우치지 않고. 어떨 때에 균형잡힌 느낌이 드느냐 물었더니, 아이디어가 샘솟고, 창작하고픈 것이 많을 때에 균형잡힌 느낌이 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이러한 그림을 그려준 후,
뒷면에,

Paula -  balanced
아이디어가 가득할 때,
창작하고 싶은 것이 가득할 때
균형잡힌 느낌이 드는 나는,
저울에 무얼 올려 놓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닌,
그 밑을 그득 채워 균형잡는 사람,
가득할 때 행복한 사람.

이라는 글을 적어주었다.

그녀에게 그림 설명을 해주었더니 매우 좋아하면서 책도 구입하였다. 그러고는 자신은 루마니아에서 왔다고 했다.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 지금 동국대 영화과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고 했다. 나의 내면초상화 작업이 매우 흥미롭다고 했다. 그녀의 창작에 대한 열정을 듣고 있자니, 나 역시 그녀가 매우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국의 문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데, 괜찮다면 간단한 인터뷰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사람이었기에, 흔쾌히 허락하고, 마켓을 마치는 6시 반에 앉은 자리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0-2.
6시가 되었을 때, 일이 생겼다.
그래서 자리를 비우며, 앉았던 곳에 메모를 남겨두었다.
"파울라, 돌아올터이니 잠시만 기다려줘요. 내 연락처는 010-5280-XXXX에요."라는 내용의 메모였다. 파울라가 나의 명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내게 전화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내가 예상보다 늦게 7시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메모가 그대로 있었고, 파울라는 없었다.
연락할 길은 없고, 미안한 마음에 홈페이지에 간단하게 이 일에 대한 사과를 적어두었었다.


그리고 사흘 후, 메일이 왔다.






1.
파울라의 편지

선영,

내 그림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라 생각해. 흑

홈페이지에 쓴 글 읽었어!
미안해,
시간을 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림에 답해줘!


파울라


Sun-Young,

i'm sure you'll understand my drawing...

i read your blog...
i'm sorry!
i'm not asking back my interview but...there is something else...
draw me back

Paula





파울라가 그린 그림 - click!






2. 나의 편지

파울라,
그 날 인터뷰에 늦어서 정말 정말 미안해. 여섯시에 급한 일이 생겨서 자리를 비웠었어. 여섯시 반까지는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그래도 혹시나 해서 있던 자리에 메모를 남겨두었었어.
"파울라! 돌아올 테니 잠시만! 010-5280-XXXX, 선영"
그런데 일이 생각보다 늦어져서 7시에 돌아오게 된 거야. 왔더니 메모가 그대로 있기에 네가 메모를 못보거나, 네가 이곳에 오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네가 내 명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엇갈렸다면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했었지. 내가 잘못 생각했었구나, 미안해 정말, 당연히 고의는 아니었어.

아직도 날 인터뷰하기 원한다면, 다음주 토요일 1-6시에 같은 장소에서 내면초상화를 그리고 있을거야. 정확히 같은 위치는 아니겠지만, 놀이터 안에 있을터이니 잘 찾아봐줘.

다시 한 번, 정말 정말 미안해!


PS) 그림 잘 봤어. 그런데 empty bow line 이거 무슨 뜻이야?



Dear Paula

I'm terribly sorry I was late for the interview.
6:00, My friend was in emergency so I had to help her.
so I thought I could come back till 6:30.
I left the note to you and my phone number on the seat where I sat that day.
It said "Paula! I'll be back! 010-5280-XXXX, Sun-Young, Cho"
But I was late so I came back at 7:00
The note was there still. so I assumed you didn't see the note or you didn't come back.
Because you had my name card I thought you could call me to my cell phone if you came back...
But I was wrong I guess.... Sorry for everything.
And of course I didn't do it purpose! 

If you still want to interview me,
I'll be at the same place doing inner portrait on Saturday 1-6 o clock
I might be on the different side of the playground, but I'll be in that playground.

Again, I'm terribly sorry!!!!!


PS) I understood the picture but what do you mean empty bow line?


Sincerely, 
Sun-Young, Cho








3. 파울라의 편지


선영,
답장 고마워!
그림 속에 empty hole (빈 칸)은 그 빈 칸을 좋은 추억으로 아름답게 메우기 위해서는 너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뜻이었어. 꼭 다큐멘터리나 인터뷰를 따기 위해서는 아니야. 단지 너랑 다시 한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
사실, 너와 무언가 통했다고 느꼈거든, 연결된 듯한. 그게 무언지, 왜인진 잘 모르겠지만,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란, 그런 느낌이야
. 너를 만났을 때, 널 다시 만나고 싶단 생각했어. 너는 내가 만난 대다수의 한국인과는 뭔가 달랐거든. 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재미있고, 독특하고, 또 그런 너의 에너지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해. 이건 너의 독창적인 책을 보고도 잘 알 수 있었어.
난 네가 너무나도 특별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네가 나를 어떤 방식으로든 실망시킬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어. 그냥 느낌으로.. 루마니아에 있는 (내가 신뢰하는!)내 친구들과 비슷한 느낌이었거든. 며칠 뒤에 네 홈페이지에 쓰인 글을 보고 왜 그 자리를 더 살펴보지 않았을까, 왜 네가 남긴 메모를 못 발견했을까 내 자신을 탓했어. 그냥 한 번 슬쩍 보고 네가 없기에 매우 실망해서 떠났거든. 네가 그려준 그림과 너무 들어맞아서 놀라워.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나 역시 잘못했는 걸. 나도 미안해!
그냥 우리 이렇게 생각하자. 그 때의 엇갈림은 그냥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라고. 우리 이야기 마치 영화처럼 재미있잖아? :)
널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기뻐! 하지만 인터뷰 때문에만 널 만나고팠던 건 아니라구! 그렇겐 생각지 말아줘.
토요일, 놀이터에 가서 연락할게.

파울라.




Sun-Young,
thanks for your answer!
the empty hole means that i have to see you again to fill it with good memories and make it colorful. it is not about documentary and interview, it is about the fact that i wanted to have one more conversation with you. 
In some way, i felt a connection with you - something in common. I don't know why/what and maybe this was what i wanted to discover. After meeting you i felt that i would really like to talk to you again. This is because you are different from most of the Koreans I met. You have such an interesting view of seeing this life that you spread your energy upon the others. You succeeded in doing so with me  by your book which I found very interesting and creative. 
I knew you are so special that you cannot disappoint me. i felt it..I trust people like you because I am surrounded by them in Romania..i realized it only after i got home..after few days i saw your blog and i blamed myself for not looking for the note more carefully. I just took a glimpse on your spot and watch it for a while and leave the place very sad. 
it's incredible that maybe unconsciously you confirmed your drawing.
You don't have to be sorry..I have a big fault...I am very sorry too! 
Let's put it in this way: this was how it should have been! Anyway, our story is good for a movie script :)
I would be very happy to see you again! But I don't want you to believe that I want to meet you only for interview. I'll think how to solve that. I'll text you on Saturday if I arrive there...

Sincerely...Paula 







4. 나의 편지

파울라에게

사실 나 역시 네가 독특하고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우리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혹시 일요일 저녁 시간 어때?
토요일에 잠깐 보기 보다는.
괜찮다면, 연락줘.
난 7시 반부터 좋아.

선영


Dear Paula

Actually I thought you are also an interesting and special person.
I think we could be good friends.
How about having dinner on Sunday? rather than short talk on Saturday.
If you can, text me or e-mail me.
I'm free on Sunday after 7:30pm

Sincereley,
Sun-Young, Cho





5. 파울라의 편지

선영,

일요일 저녁 좋아 좋아.
어디서 만날 지 알려주면 7시 반까지 갈게!
 
파울라


Dear Sun-young,
 
I would love to have dinner with you on Sunday!
give me the location and I‘ll be there by 7:30 pm!
 
Sincerely,
Paula






6. 나의 편지

파울라,

그럼 우리가 처음 만났던 놀이터의 그 장소에서 만나자. (내가 내면초상화 하고 있었던 장소)
홍대에 좋은 곳이 많으니, 거기서 만나서 가면 될거야.
휴대폰 번호 알려주겠어?
내 번호는 010-5280-XXXX

고마워,

선영.


Dear Paula

How about meeting in the same spot in the playground? (the spot I was doing impromptu inner portrait)
There's lot's of good places near Hongdae.
And could you let me know your cell phone number?
Mine is 010-5280-XXXX

Thank you.



Sincerely,
Sun-Young, Cho





7. 파울라의 편

그래, 거기서 보자.
010-5836-XXXX 이게 내 휴대폰 번호야.
그럼 곧 봐!
안뇽

파울라.

Ok then!see you there!
010-5836-XXXX is my phone number.
see you around then!
bye bye
 
have a nice evening!
your,
paula






이렇게 해서 파울라랑 나는 정말로 만났고, 그 인연은 이어져, 지금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 날 만남에 대해서는 지난 글 어딘가를 뒤져보시면 나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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