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 빵
1.
여즉 제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큰 까닭은 마지막 날 일에 있다.
먼저 룸메이트이자 음악가 소진이 있다.
우리는 제천서 3일간 같이 방을 썼으나,
스케쥴이 달라서 서로가 무슨 작업하는 지도 모르다가
마지막 날 아침에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 중,
소진은 자신이 이따 나의 내면초상화 부스를 찾아오겠다며
노래를 부를터이니 내면초상화를 그려달라 하였다.
말만으로도 낭만적, 꼭 들러달라 했다.
7:40pm
서울 가는 차 시간이 다 되어가,
언제 올 지 기다리는데 문자가 하나 온다.
"저희 이제 공연 끝내고 가요! 좀만 기다려요 초!!"
7:50pm
떠나야할 시간을 10분 남기고 소진과 빵이 왔다.
의자 하나를 자신들이 앉은 의자 앞으로 끌어당기더니
나를 앉힌다.
노래 제목을 두 개 알려주며 고르라 한다.
그 중 '햇빛'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청한다.
'달'로 시작하는 노래를 고를 줄 알았다며
소진과 빵은 웃으며 서로가 든 악기를 바꿔 쥔다.
2.
눈을 감는다.
친다, 조용히 기타 친다.
움직인다, 돌과 산호모양으로 이루어진 악기 사르르 움직인다.
부른다, 목소리 노래 부른다.
날 위해 두 사람이 음악으로 이 공간을 이 시간을 짓는다.
멎는다, 나는 숨이 잠시 멎었다가는 그 안에 녹아든다.
3.
나는 청혼을 받아도 이리 감동적이진 않을거라며
말을 못 잇는다.
4.
방금 빵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그 순간은 나에게만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특별한 순간이었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기뻤다, 라는 말로는 아마 다 표현하지 못하겠지.
5.
살면서 이런 느낌들만큼은,
붙잡아 부여안고 싶다.
이들의 노래 들으러,
나는 아마 제천에 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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