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머니의 양 볼에 뽀뽀 쪽 하고 팔과 다리를 조심스레 주물러드렸다.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니 눈빛을 반짝이며 고마워. 하셨다. 사랑은 표현해야지. 부드럽게 손을 잡으니 할머니는 없는 힘을 다해 손깍지를 꼭 끼우며 미소 지으셨다.
할머니 댁은 이층짜리 주택이었다. 어린 나와 동생들은 나무로 된 난간에서 말 타는 시늉을 하고 놀고. 계단 위로 올라가서 걸린 커다란 그림을 보며 영화 보는 놀이를 하였다. 모과와 대추를 따서 소꿉놀이하고 바느질 방에 가서 천 조각을 찾아내어 몸에 감싸곤 역할극을 하기도 했다.
긴 복도를 우당탕탕 뛰어가면 그 끝에 부엌이 있었고 부엌의 비밀 문을 열면 부엌에 딸린 방이 나왔다. 바깥 정원에는 옆 건물 복덕방과 기원이 슬쩍 보이는 작은 창문이 있었고 지하에선 늘 퀴퀴한 특유의 냄새가 났지.
큰 방에는 자개장이 좌르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거울 딸린 화장대의 서랍을 뒤지며 할머니 이거 가져도 돼요? 할머니 저거 가져도 돼요? 묻기를 즐겼다. 할머니 댁은 재료 천국이었다. 구석구석 서예 용품, 그림 용품, 양재 용품이 가득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는 큰 집을 정리하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삼촌이 사는 아파트 근처였다. 자개장은 다 가져올 수 없어 두 칸은 안방에 두 칸은 작은방에 두셨다. 나머지는 처분하셨다. 그곳에서도 할머니는 즐기며 사셨다. 노인대학 가셔서 그림 그리고 글 쓰시고. 화초를 기르고 산책을 하셨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해지시며 할머니는 점점 기억도 잃고 온종일 텔레비전만 보게 되셨다. 그 많던 화초들은 엄마께서 하나 둘 정리하셨다. 나는 종종 찾아가 할머니와 대화했다. 오늘의 일도 기억 잘 못 하시지만 옛날 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나는 반질반질한 진밤색 가죽 소파에 앉아 할머니의 피난 시절 이야기를 귀 쫑긋하고 듣곤 했다.
할머니는 지금 요양병원 작은 침대 위에 계신다. 할머니는 아기처럼 자그마해지셨다. 이층 집과 정원과 식구를 챙기다 도움을 받으며 지내신다. 간병인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다.
할머니 손을 다시 잡는다. 부드러운 살 밑으로 뼈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부서질까 조심스럽다. 우린 작게 태어나 팽창했다가 다시 이렇게 사그라드는구나.
내가 사랑해요. 말씀드릴 때마다 할머니는 고맙다. 고맙다. 대답하신다. 그게 난 마음 아프다. 할머니가 왜 고마운데요. 그냥 나도. 하시면 되는 건데요. 그렇지만 그 말은 하지 않고 넣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