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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17 할머니
  2. 2018.02.03

할머니

 

할머니의 양 볼에 뽀뽀 쪽 하고 팔과 다리를 조심스레 주물러드렸다.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니 눈빛을 반짝이며 고마워. 하셨다. 사랑은 표현해야지. 부드럽게 손을 잡으니 할머니는 없는 힘을 다해 손깍지를 꼭 끼우며 미소 지으셨다.

 

할머니 댁은 이층짜리 주택이었다. 어린 나와 동생들은 나무로 된 난간에서 말 타는 시늉을 하고 놀고. 계단 위로 올라가서 걸린 커다란 그림을 보며 영화 보는 놀이를 하였다. 모과와 대추를 따서 소꿉놀이하고 바느질 방에 가서 천 조각을 찾아내어 몸에 감싸곤 역할극을 하기도 했다. 

긴 복도를 우당탕탕 뛰어가면 그 끝에 부엌이 있었고 부엌의 비밀 문을 열면 부엌에 딸린 방이 나왔다. 바깥 정원에는 옆 건물 복덕방과 기원이 슬쩍 보이는 작은 창문이 있었고 지하에선 늘 퀴퀴한 특유의 냄새가 났지.

큰 방에는 자개장이 좌르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거울 딸린 화장대의 서랍을 뒤지며 할머니 이거 가져도 돼요? 할머니 저거 가져도 돼요? 묻기를 즐겼다. 할머니 댁은 재료 천국이었다. 구석구석 서예 용품, 그림 용품, 양재 용품이 가득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는 큰 집을 정리하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셨다. 삼촌이 사는 아파트 근처였다. 자개장은 다 가져올 수 없어 두 칸은 안방에 두 칸은 작은방에 두셨다. 나머지는 처분하셨다. 그곳에서도 할머니는 즐기며 사셨다. 노인대학 가셔서 그림 그리고 글 쓰시고. 화초를 기르고 산책을 하셨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해지시며 할머니는 점점 기억도 잃고 온종일 텔레비전만 보게 되셨다. 그 많던 화초들은 엄마께서 하나 둘 정리하셨다. 나는 종종 찾아가 할머니와 대화했다. 오늘의 일도 기억 잘 못 하시지만 옛날 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나는 반질반질한 진밤색 가죽 소파에 앉아 할머니의 피난 시절 이야기를 귀 쫑긋하고 듣곤 했다. 

 

할머니는 지금 요양병원 작은 침대 위에 계신다. 할머니는 아기처럼 자그마해지셨다. 이층 집과 정원과 식구를 챙기다 도움을 받으며 지내신다. 간병인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다. 

할머니 손을 다시 잡는다. 부드러운 살 밑으로 뼈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부서질까 조심스럽다. 우린 작게 태어나 팽창했다가 다시 이렇게 사그라드는구나. 

 

내가 사랑해요. 말씀드릴 때마다 할머니는 고맙다. 고맙다. 대답하신다. 그게 난 마음 아프다. 할머니가 왜 고마운데요. 그냥 나도. 하시면 되는 건데요. 그렇지만 그 말은 하지 않고 넣어둔다. 

 

 

 



, 꽃이다. 들꽃이에요? 이렇게 꽂아놓으니까 폭죽놀이 같아요.

 

제가 가라앉을 땐 정말 깊이 가라앉지만.. 저를 굉장히 행복하게 해주는 몇몇 가지가 있어요. 저 꽃 보니까 이번주에 저를 기쁘게 했던 것이 생각이 나요. 저번 주에 친구랑 전시를 보러 갔거든요. 불광역쪽? 좀 멀리서 하는 전시였는데.

전시장소가 창고였는데 입구에 오래된 큰 나무문이 있었어요. 그게 굉장히 뻑뻑하게 꽉 닫혀있더라고요. 세련되게 만들어진 게 아니어서 맞물린 두 나무문 사이에 틈이 없었고, 열었을 때 부드럽게 열리는 게 아니라. 압력과 함께 거칠게 확 열리더라고요.

 

그 느낌이 참 좋았어요. 친구가 뒤늦게 도착했기에 물었어요. 너 이 문 양쪽으로 열어봤냐고요. 그랬더니 한쪽만 열어봤대요. 그래서 나가보라고 내쫓았어요. 쫓겨난 친구가 다시 양쪽으로 문을 탁 열었는데 아까처럼 확 하고 열렸어요. 그 장면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친구는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보며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저는 슬픔이나 아픔도 강렬하게 느끼지만 기쁨도 크게 느끼거든요. 그 문을 봤을 때도 너무너무 기뻤어요. 문을 확 여는 그 느낌이 너무너무 좋았어요. 제가 자극들에 아이처럼 반응을 하니까. 제 방에 모빌도 놓고 물건 색깔도 알록달록한 거 많이 놓고. 일부러 그러거든요. 어떤 걸 봤을 때. 정말 기뻐요.

 

 

그렇네요. 생각해보니 그 문이 저 같아요. 새로운 것에 반복해서 도전하고 그때마다 긴장되고 두렵고 뻑뻑하고 눈물날만큼 아프고 힘든데 열고 또 열고 열고 열리고 싶어요. 왜 그런진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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