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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219건

  1. 2017.08.09
  2. 2017.07.13 내가 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3. 2017.07.03 나는 가능성의 세계에 살아요​
  4. 2017.06.20 바키타
  5. 2017.05.19 옷 수선 가게에서
  6. 2017.05.04 출근을 아름답게, 일상을 아름답게, 삶을 아름답게
  7. 2017.05.03 작업
  8. 2017.04.30 우울을 다루는 법
  9. 2017.04.11 별 일
  10. 2017.03.29 작은 기적


장대비가 내리는 날 택시를 탔다. 참방참방 후두둑 후두둑 비가 많이도 온다.  

택시가 다리를 건너 강북으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헌데 무심코 다리 건너를 보니 남쪽은 아직도 시꺼먼 먹구름이 가득이다.

 

"다리 건너는 아직도 먹구름이 잔뜩이네요."

기사님께 혼잣말처럼 말을 건다. 

"그런데 여긴 바닥도 말라있고 비 온 흔적도 없는 거 보니 비 아예 안 왔었나봐요. 기사님은 이런거 많이 겪으시겠어요."


기사님이 묵직한 목소리로 그러신다. 

"그럼요. 동료들을 만나 얘기해도 어떤 사람은 비가 많이 왔다 그러는데 어떤 사람은 비가 안 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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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언니는 그랬다. 내가 진짜 나를 가감없이 보여줄 때, 자연스레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은 떨어져나갈 거라고. 그러니 나를 꾸미려 하지도 말고 나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진짜 나'로서는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포장하고 포장하고 또 포장한 내 모습만을 보여주려 애썼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해 이도저도 아닌 모습만이 남았고, 그렇게 맺은 어설픈 관계 또한 종국엔 무너져내리기 일쑤였다. 


 요즈음의 나는 용기내어 어느 때보다 더 '나'인 모습으로 살려한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나'인 모습을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나는 웃는다. 어떻게 보일 지 생각하지 않고 크게 웃는다. 예쁘게 호호 웃지 않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나는 바라본다.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 내가 그렇듯, 있는 그대로여서 아름다울 사람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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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의 세계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여기 놓인 이 소스통을 예로 들자면


J씨는 이 소스통의 재질, 이 소스의 성분은 뭘로 이루어졌을까, 이 소스통의 직경과 길이는 어떻게 되는가? 담긴 소스의 양은 어떻게 되는가? 이 소스통이 놓인 위치 등에 관심을 가지시겠지요.


저는 이 소스통 속 소스가 빨강색이 아니고 파랑색이라면 어떨까, 이 소스가 넘쳐서 폭발하거나 통이 다 빈다면? 이 소스가 원통이 아니라 사각뿔이라면? 소스통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놓여 있다면, 예를 들면 하늘에 떠 있다면? 빈 소스통을 조명으로 사용한다면? 등등을 상상할 거예요.


저는 가능성의 세계 속에 살아요. 현재가 아닌 가능성을 보고 상상하는 데에 능하지만 현상황을 정확히 보는데에는 좀 부족해요. J씨는 반대로 현재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차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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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키타


  바키타 돌고래는 현재 전세계에 25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보호하기 위해 씨 셰퍼드(해양생물보호단체)의 배에 오른 한민 작가님이 독일 동료에게 

  "우리가 바키타 돌고래를 (25마리 밖에 남지 않았는데) 멸종하지 않게 지킬 수 있을까?" 

  했더니 동료가 이리 답했다고 한다.

  "나도 사실 몰라. 그렇지만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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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수선 가게에서



  옷 수선 가게에 맡겨둔 옷 찾으러 들렀다.

감사합니다.”

뭘 돈 받고 해드리는 건데.”

그래도 정성스레 해주셨잖아요. 감사해요.”

  미소 띤 채 말하자 퉁명스럽던 사장님의 태도가 바뀐다.

가만 있자. 봉투에 좀 담아드릴까요?”

 

  내가 먼저 웃으면 그 웃음은 반드시 돌아온다. 웃음이 즉각적으로 돌아오지 않다하더라도 상대 마음 속 즐거움이 조금이라도 자라났을 걸 알아서. 그리고 그게 내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 걸 알아서 난 매일 웃음을 짓는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남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 나를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나는 다분히 이기적인 사람인지라. 애정 어린 태도로 세상을 대하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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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아름답게, 일상을 아름답게, 삶을 아름답게
 


 
 친구이자 작곡가 B의 출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 나는 웃음을 빵하고 터뜨렸다. 그의 작업실은 집과 고작 600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다. 자가용도, 대중교통도 필요 없는 짧은 거리인데 그는 이 출근길에 대하여 철저한 원칙을 세우고 지키고 있었다.
 
 먼저 그는 출근하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시간을 세심하게 골라서 출근한다.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하루의 기운이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또한 그는 동절기와 하절기의 출근시간을 따로 정해두고 있다. 해가 들어오는 시각이 다르고 작업실이 데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절기에는 8시경, 동절기에는 10시경에 출근한다.
 
 몇 년 째 일할 때 외에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은둔하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이러한 자신만의 견고한 틀이다. 당시의 나는 그저 B가 참 철저하구나, 재밌는 친구다 하며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인도네시아 족자에서 목판화 작업실로 출근하려 자전거 페달을 밟던 나는 돌연 B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매일 목판화 작업실 출근 때마다 보는 풍경. 고개 들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 하늘과 지붕들을 나는 즐기고 있다. 자전거 리듬과, 작업에 대한 기대와, 맑은 공기가 더해져 만드는 아름다운 출근길.
 
 처음 출근할 때에 나는 이 길이 아닌 자동차가 쌩쌩 다니는 큰 도로를 택했다. 그러다가 이 샛길을 발견한 후에는 이리로만 다니게 됐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달라지니 출근길이 즐거워졌다. 나무와 집 사이 꼬불꼬불 골목길을 따라 핸들을 움직이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과 인사도 나누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작업실에 도착하면 내 기분 또한 맑다. 먼지 날리는 큰 도로로 긴장하며 출근하는 것과 다르다.
 
 왜 B가 그토록 출근길에 신경썼는 지,
 이제사 나는 가슴으로 그를 이해한다.
 
 
 어느덧 자전거가 나를 몰아 목판화 작업실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왠지 들떠 있는 Pahlevi로부터 갤러리에서 있을 다음 전시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80권의 책이 곧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모 작가가 매일매일 일기처럼 기록한 드로잉을 모은 것인데 그것이 자그마치 80권이란다. 쌓인 80권의 책은 부피부터 어마어마하다. 작은 것이 쌓여 이렇게 어마어마해진다.
 
 
 아름다운 출근길이 모여 아름다운 일상이 되고, 아름다운 일상이 쌓여 아름다운 삶을 이룬다. 훗날 내 삶이 저 80권의 책처럼 아름답기를. 고대하며 한 장의 오늘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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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미친 사람처럼 작업실에 틀어박혀 

4박 5일 째 '쓰고' '그리고'를 반복하고 있다. 

거기에 '지우고'가 더해져 겉으로 보이는 진도는 더디지만. 


왠지 모를 설렘과 뿌듯함을 느낀다. (엄청나게 섭취하고 있는 카페인 때문일지도)

최근 읽은 '말하다'에서 김영하 작가님은

장편 하나를 쓰고 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쓸 지 신중하게 선택한다고. 


다시 새 책에 도전하는 지금, 

'이 책을 쓰고 난 후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가방 어깨끈을 야무지게 잡고 책 산을 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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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을 다루는 법

 

 

어제는 엄청 기분이 좋았었거든. 오늘 아침까지도 기분이 좋았었고. 그런데 갑자기 우울해졌다가 지금 방금 다시 기분이 좋아졌어.

나 1층으로 내려와서 예술가 친구 Sigit과 술 한 잔 하고 (Sigit이 레지던시로 다녀온) 베를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 지금은 같은 공간에서 노트북으로 각자 할 일을 하고 있고.

말하자면 Sigit과 같이 시간 보내니 기분이 좋아졌는데, 나 우울할 때마다 늘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만 하는 걸까?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W

1.

행복이 격하게 찾아온 뒤에는 작은 우울함이 곧 따라오기 마련이야. 그러니 행복을 낭비하기 보다는 다가올 우울을 위해 간직해두면 좋아. 


2.

만일 네가 기분이 가라앉을 때마다 누구를 필요로 한다면 그건 좋은 신호가 아니야. 물론 네가 우울할 때면 정말 괴롭고 힘겨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렇지만 네가 누군가를 '필요로'하기 시작하는 순간 넌 그 관계를 망치기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누군가를 '필요로'해선 좋은 관계를 만들기 힘들거든. 


3.

나도 어제 아침과 오후에는 행복했었어. 그런데 밤이 되니 갑자기 우울감과 외로움이 나를 찾아왔지. 지금도 완전히 좋아진 상태는 아니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것을 난 알고 있어

나는 우울한 시간 동안에는 웬만하면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않으려고 해.

다른 사람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 금세 기분이 좋아질 거라는 걸 나도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건 내 기분을 더 좋게 해줄지언정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그저 기분이 일시적으로 나아지길 바라는 게 아니야. 나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

그래서 나는 우울이 찾아오면 홀로 우울을 직면하고 그 속에서 뭐가 됐든 깨달으려 해.

고통의 시간을 앞으로 잘 나아가기 위한 연료로 활용하려는 거지.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냥 괴롭기만 하고 성장하는 데 실패해. 그렇지만 정말 가끔씩 성공하고,

그 때에 나는 자라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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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



 K가 지원금을 따냈다며 문자했을 때 나는 바로 전화를 걸어 진심어린 축하를 했다. 축하해. 기뻐. 네가 자랑스러워. K는 여러 친구들에게 연락했지만 바로 전화해서 축하해준 것은 나 혼자였다며 기뻐했다.

 

 내가 이번 인터뷰 기사를 나의 족자친구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족자친구들은 멋지다, 기쁘다, 계속 창작하며 나아가라며 진심어린 축하를 해주었다. 일을 시작한지 꽤 되었기에 가족들마저 무덤덤해있었던 차였는데. 크게 기뻐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일은 바라보기에 따라 별 일이 될 수도, 별 일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오늘 내게 일어난 일들을, 내 친구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당연스레 여기지 말고 경이로운 눈으로, 처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별 일로 만들자. 호들갑 떨며 기뻐하자.

 

 매일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걱정과 염려가 아닌 격려와 축하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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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적




1.

 족자 집에서 내면초상화 파티를 하였다. 족자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내면초상화를 그려주었다. 그 중 스물 한 살 티아의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는 ‘긍정적인 사고’였다.


 “돈은 없었지만 그냥 가고 싶었어, 이스탄불에. 왠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하면 갈 수 없을까? 바라고 또 바랐어. 하도 주변에 말하고 다니니까 어느 날 걀리가 ‘교수님과 의논해보면 어때?’하더라고. 그래서 큰 기대 없이 교수님께 의논드렸더니 일단 학교에 기금이 있으니 제안서를 제출해보라고 하신 거야. 마침 이스탄불에 전공 관련 컨퍼런스가 있었고. 거기 참석하겠다고 제안서를 제출했더니 통과되어서 학교 지원금으로 이스탄불에 갈 수 있게 됐어.”

 “그전까지 나는 컨퍼런스에 학부생이 지원받아 참가할 수 있는 지도 몰랐어. 그냥 이스탄불에 가고 싶으니까 계속 갈 수 있을 거라고만 줄곧 생각해왔거든. 그랬더니 이런 일이 생겨났어.” 

 “난 뭐든 바라는 게 생기면 다 잘 될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러면 신기하게도 기적이 일어나.” 



2.

 족자에 갈 때의 나는 그저 즐겁게 작업을 하다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비행기 옆자리 티아와 친구가 되었고 이어 걀리, 지크리, 라이언, 카쭉과 사귀게 되었다. 이 무슬림 친구들은 나에게 무슬림의 문화, 그리고 족자의 거리를 소개해주었다. 

 또한 갤러리겸 헌책방의 주인장 시깃과 친구가 되었고 그에게 한스, 팔레비, 아리를 소개 받았다. 그 인연으로 팔레비의 목판화 작업실에서 목판화를 작업하게 되었다. 

 목판화 작업실에서는 크로키 작가 밤방을 알게 되었다. 이 친구는 내게 에이스 콜렉티브 작가그룹 멤버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알게 된 루디는 나에게 실크스크린 갤러리 크랙 담당자 모키를 소개해주었다. 모키는 내게 크랙에서의 전시 제안을 하였다. 

 기록용으로 사용하던 SNS를 통해 아촘을 만났고 아촘이 소개해준 아랴와 친구가 되어 아랴의 작업실에도 매일 출근하여 작업했다. 아촘과 아랴는 나를 족자에서 열리는 갤러리 오프닝들에 초대해주었다.

 갤러리 오프닝에서는 마티아스와 비비앙을 알게 되었고 비비앙은 동판화 스튜디오 그라피스 밍기란에 데려가주었다.  


 즐겁게 작업하다 오자는 나의 소망은 내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실현이 되었다. 



3.

 소망은 종종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소망이 이루어지는 방법이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장의 내 판단만으로 당장 그 소망이 이루어질지, 이루어지지 않을지 가늠하기보다는 일단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편이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풍경만으로 내가 나아갈 길을 한정짓지 않으려한다. 내가 모든 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갈 수 있는 길이 제한된다. 눈을 감고, 일단 가고 싶은 목적지부터 상상해본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그리하여 목적지를 포기하고 적당히 멈춰서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에나는 나의 한계를 인정한다. 동시에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더 넓은 가능성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믿으며 걷다보면 내가 이전에 서 있었던 곳에선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펼쳐지고 끊어진 듯 보였던 길이 이어져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인지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내 가능성의 한계가 사라진다. 


 나도, 티아처럼 삶이 가져다주는 작은 기적들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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